나의 인생 2막 어촌 이야기-이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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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 2막 어촌 이야기-이지훈
  • 한국수산경제
  • 승인 2021.04.1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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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어·귀촌 칠전팔기의 아이콘, 내일은 웃으리

이지훈 선장의 귀어 스토리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칠전팔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전국의 수많은 귀어인 가운데 이지훈 선장만큼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고 이를 극복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아무리 험난한 파도도 헤치고 가다 보면 언젠가는 잔잔한 바다에 이르듯, 이지훈 선장은 그 숱한 시행착오의 바다를 지나 이제 점점 안정적인 물길로 나아가고 있다.

다이빙으로 맺은 통영과의 첫 인연
사면이 육지인 충청북도에서 태어나 30년 가까이 바다와 별다른 인연도 없이 살아온 지훈 씨가 지금 ‘통영풍경호’의 선장이 된 것은 단순한 우연도 정해진 운명도 아닌, 그 누구보다 다양하게 경험한 시행착오 극복의 결과물이다. 결정의 순간마다 끈질기게 따라붙는 불운과 실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지훈 선장은 번번이 더욱 새로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저는 원래 충북 청주에서 다이빙숍 직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통영에 내려와서 처음에는 그 경력을 살려서 스킨스쿠버 다이빙숍을 운영했어요.”
지훈 씨가 통영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11년, 스물아홉 살 나이였다. 그 당시 지훈 씨는 청주에 위치한 다이빙숍에서 온라인을 포함한 용품, 교육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당시 사장님이 ‘다이빙숍 관리를 잘하려면 직접 다이빙 용품을 써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시면서, 경남 통영이 다이빙하기에 좋으니 실습 겸 한번 다녀와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습니다. 그렇게 처음 통영과 인연을 맺어 자주 내려오다 보니 또래 친구도 사귀고 형님들도 많이 만나게 됐죠. 점점 통영에 정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4년간 청주와 통영을 오가던 지훈 씨는 2015년 선배 두 명과 의기투합해 통영에 다이빙숍을 차렸다. 다이빙 인구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에서 바다가 있는 현장에 직접 숍을 차리는 것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결과는 실패였어요. 가장 큰 문제는 저희 자체적인 배가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낚싯배를 운영하는 친구 어선을 빌려서 다이빙 손님을 모시고 나갔는데, 서로 시간을 맞추는 데 한계가 있었죠. 손님이 원하는 시간에 마음껏 다이빙을 나갈 수 없다 보니 문제가 한둘이었겠습니까? 결국 손님이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점점 남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다른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선원으로 배를 타기 시작했죠.”
그러나 지훈 씨는 이때 다이빙숍에서 인생의 가장 큰 보물을 만나게 된다. 다이빙 수강생이었던 현재의 아내를 만나 불과 6개월 만에 가정을 꾸리게 된 것. 지훈 씨는 이즈음 한 단계 더 ‘어른’의 눈높이에서 자신의 앞날을 계획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부터는 저는 더 이상 저 혼자가 아니잖아요. 평생 안정적이면서도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리고 나와 아내가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일까 고민했죠. 결론은 바다였습니다. 저희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것도 바다 덕분이고, 통영에서 3년 가까이 지내본 결과 앞으로 제가 잘할 수 있는 일도 통영 바다에서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양식장 시행착오를 딛고 어선어업으로
2017년, 신혼생활 시작과 함께 거제까지 일터를 넓힌 지훈 씨는 귀어자금 지원을 받아 가장 먼저 거제도 부근에 패류 양식장을 구입했다. 그리고 양식장 관리용으로 1.2톤짜리 작은 어선도 진수했다. 남은 자금으로는 3톤짜리 중고 어선을 구입해 어선어업 활동을 병행했다.
“2018년에 처음으로 시설물을 설치하고 굴의 종묘를 줄에 매달아 바다에 넣었습니다. 이런 걸 연승식 양식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줄을 지탱하는 부표를 바다에 띄워놓고 굴의 성장 속도에 맞춰 차츰 그 수를 늘려가는 겁니다. 그런데 그게 제 맘처럼 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양식장에서 줄을 올려본 지훈 씨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굴이 매달려 있어야 할 줄에서 굴은 하나도 안 보이고, 대신 그 자리를 까맣게 뒤덮고 있는 건 굴의 천적인 홍합이었다. 지훈 씨는 그제야 비로소 양식장 위치를 잘못 골랐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바다는 겉으로 보면 모두 같은 바다 같지만 바다 아래에서는 물이 흐르는 곳과 머무는 곳이 있다. 지훈 씨가 구입한 양식장은 물이 돌지 않고 머무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굴은 플랑크톤을 먹고 성장합니다. 그런데 물이 머무는 곳은 플랑크톤이 풍부하지 않아요. 굴이 쑥쑥 자라기 어려운 환경이죠. 물 순환이 잘 안 되는 곳에는 굴의 천적인 해저생물도 많이 삽니다. 천적들이 굴을 둘러싸면 플랑크톤을 먹지 못해서 결국 폐사하고 말죠. 제가 구입한 양식장이 딱 그런 자리에 있었습니다.”
첫해 굴 양식장 실패로 지훈 씨는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치패 구입비용 3800만 원을 비롯해 어장 줄, 부표, 인건비, 배 임대료 등을 합쳐 약 7000만 원 정도의 투자비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만 것이다.
“홍합 껍데기보다 제 속이 더 까맣게 탔을 겁니다. 하지만 저까지 주저앉을 수는 없었죠. 저에겐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이 있으니까요. 다행히 제겐 양식장 말고도 3톤짜리 어선이 있었습니다. 3년 정도 틈틈이 선원 생활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었죠.”


도다리쑥국처럼 향긋한 미래를 위해
양식장 시행착오 이후 지훈 씨는 거제와 통영을 오가며 어선어업에 집중했다. 새우 미끼를 이용한 줄낚시로 참돔을 잡거나 그물을 이용해 바닥에 붙어 있는 도다리, 광어 등을 잡았다.
“본격적으로 어선어업에 나서다 보니 기존 3톤짜리 배가 너무 낡고 작다는 걸 깨달았어요. 고쳐 쓰기에도 어려울 정도여서 6톤짜리 임대 어선으로 교체를 했습니다. 이미 융자를 많이 받아놓은 상태였기에 또다시 융자를 받아 새 어선을 진수하기보다는 임대 어선으로 차근차근 내 어장을 개척해보자는 생각이었죠.”
이후 지훈 씨가 가장 집중한 어종은 도다리였다. 도다리는 연중 잡히는 어종이긴 하지만 ‘도다리쑥국’이 유명한 3~4월에 몸값이 가장 오른다. 이때는 제대로 등 붙이고 잠잘 틈도 없이 조업에 나서야 한다. 낮에 그물을 깔아놓고 좀 쉬다가 새벽에 그물을 걷으러 나가는 식이다.
“도다리를 잡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망과 통발인데요. 서로 장단점이 있습니다. 저는 자망어업을 하는데, 자망에는 추가 달려 있어서 바닥까지 깊게 그물을 내릴 수 있어요. 그래서 도다리와 같은 바닥층 어종을 잡는 데 더욱 효과적입니다.”
열심히 도다리 조업에 나서는 젊은 선장의 이야기가 소문이 나면서, 지난해 3월 초에는 SBS 〈생방송 투데이〉 방송 출연도 했다. 통영에서 무난히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마을 형님 김군철 씨와 함께한 출연이었다.
“방송 출연도 출연이지만, 본인 일처럼 달려와 도와주는 마을 형님이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숱한 시행착오에도 그때까지 저를 바다에서 버틸 수 있도록 든든히 받쳐주신 김석진 어촌계장님께도 감사했죠.”
이지훈 선장은 앞으로 어선어업은 물론, 바다에서 잡은 수산물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온라인을 통한 소비자와의 직거래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저는 바다에서 고기만 잡는 사람이 아니라 매장에서 손님도 응대해보고, 온라인으로 고객 불만도 처리해봤던 경험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만족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고 물건까지 최상의 품질로 제공하는 사람, 만일 제가 수산물 온라인 유통 분야에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실패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진짜 칠전팔기의 주인공이 돼야죠!” 
‘언택트 시대’에 어선어업이 나아갈 새로운 방향, 통영풍경호 이지훈 선장은 지금 그 물길을 개척해나가고 있다.

<자료 제공=한국어촌어항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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